탄두리 프로젝트: 미리보기 - 솔개의 선택? 사자의 육아? 메기효과? 가짜 우화는 현대판 주술이다

탄두리 프로젝트: 미리보기 - 탄두리 프로젝트 SE01 中






솔개의 선택? 사자의 육아? 메기효과? 가짜 우화는 현대판 주술이다

어디서 한 번쯤은 주워들은 닳고 닳은 동물 이야기가 있다. 특히,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앉아 들어야 하는 ‘훈화 시간’이나 ‘정신교육’, ‘강연 시간’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솔개의 선택’, ‘사자의 교육법’, ‘메기효과’ 이야기. 과연 사실일까.


먼저, ‘솔개의 선택’. 솔개 부활 시리즈의 기원을 찾자면, 무려 AD 200년쯤부터 전해지는 <피지올로구스(Physiologus)>라는 서적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라틴어로 ‘박물지’를 뜻하는 피지올로구스는 생태박물지와 기독교상징백과를 섞어 놓은 느낌인데, 구전으로 흘러온 여러 짐승 이야기가 채록되어 중세에 여러 판본이 묶여 나왔다고 한다. 목차를 보면, 세이렌도 나오고, 용도 나오고, 유니콘도 나온다. 이 중에 ‘독수리’ 이야기는 불사조와 뭔가 섞여 있다. 독수리가 늙으면, 태양 가까이 날아올라, 온몸을 불사르고(!) 물에 낙하하는데, 그 사이에 태양풍으로 라식수술도 받는지 시력도 좋아지고, 다시 젊은 몸을 얻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네 인생에 복을 가득 채워주시어 독수리 같은 젊음을 되찾아 주신다.” (시편 103:5)


800년 전 필사본에 묘사된 독수리의 모습이다. 태양까지 날아올라서 젊음을 되찾는 독수리의 설화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햇볕에 깃을 다 태우고, 생닭의 몰골로 낙하하는 모습까지, 필사본에 묘사된 독수리 이야기엔 실제 생태가 아니라 기독교적 상징이 반영되어 있다. 태양(신)을 바로 보고, 태양까지 닿은 뒤 부활하는 이미지로, 독수리는 예수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가 천 년을 건너 휘청휘청 날아와, 오늘날 그로테스크한 70년 솔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암벽등반 시키는 사자’ 시리즈도 강하게 키우려고 조기특훈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새끼를 잡아 죽이는 걸 100년 전쯤 잘못 관찰한 게 엄한 교육의 폼 나는 사례인 것처럼 여기저기 전해졌다고 한다. 사자 무리 사이에선 영아살해가 간혹 일어난다. 수사자끼리 싸움이 나서 무리의 우두머리 사자가 바뀌면, 새로 무리를 차지한 수사자는 번식을 위해 남아있던 새끼를 같이 죽여버린다. 암사자는 새끼를 키우는 동안은 새로 임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새끼를 살리기 위해서 격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새끼를 피신시키기도 한다. 사자는 한 번에 두세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장성하기까지 2년이 걸리고, 생존율은 30% 내외다. 같이 잘 키워도 모자랄 판에 서바이벌 오디션 할 여유가 없다.


그럼 ‘메기 효과 Catfish Effect’는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일까? 메기 효과 이야기의 원류가 되는 ‘러시아 메기와 서방 세계 청어 Russian Catfish and Western Herring’ 비유는 1949년, 아놀드 토인비가 낸 같은 제목의 소책자에 등장한다. 이는 ‘Catfish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1950년 4월, 잡지 <The Rotarian>에 실린 아놀드 토인비 Arnold J. Toynbee의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간단히 추리자면, ‘서구 블록(청어떼)의 발전은, ‘메기’ 역할을 하는 러시아의 그림자가 반면교사이자, 체제경쟁의 파트너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도전과 응전’이란 그의 테마가 읽히는 비유이기도 하다. 

1950년 칼럼에서 토인비가 빗대어 쓴 영국 어부의 청어잡이 이야기가 어찌 흘러흘러 미꾸라지까지 됐는지 모르겠는데, 중화권에서는 또 노르웨이 정어리가 되어서 이야기가 돈다고 한다. 정치˙사회 시론에 쓴 비유가 어쩌다 인력관리, 자기계발 경전의 일부가 됐는지도 의문이다.

같은 수조에 천적을 넣으면 진정한 활력이 유지될까? 유리창에 맹금류 그림자를 붙여놓기만 해도, 다른 새들은 가까이 오길 꺼린다. 천적의 존재는 먹이가 되는 동물의 심신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끼친다고 한다. 천적을 계속 의식해야 한다면 제 명에 못 산다는 말이다. 그리고 수조에 든 고기라면 어차피 잡혀서 죽을 상황일 텐데, 활어인지 아닌지는 먹는 사람 입장에서나 중요하겠다.


<Russian Catfish and Western Herring> Arnold Toynbee. Oxford University Press,New York. 1949.

솔개(떠다니는 합성사진 자료엔 대충 독수리)는 하필 죽음과 부활의 70년을 살려놓고, 제 새끼를 난데없이 암벽등반 등등으로 생고생시키는 동물은 ‘썰’을 푸는 사람마다 사자, 호랑이, 독수리로 옮겨다니며 변화무쌍하고, ‘메기 효과’는 또 그 효과가 설파하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니, 기껏 제 주장의 근거 사례라고 든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애초에 의식하지 않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훈화’ 시간을 위해, 또 구태의연한 ‘콘텐츠’의 분량을 메꾸기 위해, 굳이 이런 엉터리 캐스팅을 하는 이유는, ‘동물의 생태’라는 구실이 일견 과학적이고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 아닐까? 이들이 습관처럼 꾸준히 퍼뜨리는 가짜 교훈은, 합리를 가장한 주술적 믿음이 된다. 무심코 흘러다니는 ‘고양이 재수없어’란 말이 얼마나 많은 고양이를 죽였을까? 조기교육이니 학대를 하면서도 ‘나는 사자의 육아를 하고 있다, 강하게 키운다’고 기세등등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사이비 과학의 껍질을 쓴 이야기는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해롭다.